18/05/2026
"겨울이었다. 서울은 영하 15도. 사람들은 두꺼운 패딩을 입고도 떨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뛰고 있었다. 초등학생 같았다. 손에는 도시락 가방. 그는 뛰었다. 넘어져도 뛰었다. 얼굴은 시뻘게졌다. 입김은 하얗게 뿌옇게. 왜 그렇게 뛰었을까? 집에 가면,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는... 병석에 누워 있었다."
**겨울 속 작은 손, 달리는 아이**
가장 뜨거운 마음은, 가장 차가운 계절에도 멈추지 않는다.
서울의 한 오래된 빌라. 겨울이었다. 작년보다 더 추운 겨울.
길거리 사람들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숙인 채 걸었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너무 추워서.
그런데 한 아이가 있었다. 이름은 준호. 초등학교 3학년. 9살.
그는 매일 오후 3시, 학교가 끝나면 뛰기 시작했다.
뛰었다. 쉬지 않고. 땀이 날 정도로.
친구들이 말했다. "준호야, 왜 그렇게 뛰어? 버스 타면 되잖아."
준호는 대답했다. "버스는 너무 느려. 나는 일찍 가야 돼."
"왜?"
"엄마가 기다리셔."
준호의 엄마는 병에 걸렸다. 심한 관절염. 거의 움직일 수 없었다. 아빠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 준호는 엄마의 유일한 가족이자, 유일한 간병인이었다.
매일 아침, 준호는 학교 가기 전에 엄마의 밥을 차려 놓았다. 그리고 도시락도 준비했다. 학교 급식은 하나를 더 받아서, 도시락에 싸 왔다.
그 도시락은 엄마의 저녁이었다.
문제는 온도였다. 겨울에는 음식이 금방 식었다. 그래서 준호는 뛰었다. 최대한 빠르게. 도시락이 조금이라도 따뜻할 때, 엄마에게 전해 주기 위해서.
오늘도 준호는 뛰었다.
학교 정문을 나서자마자, 뛰기 시작했다.
좌우를 보지 않았다. 신호도 대충 보았다. 위험했다. 하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다.
발이 미끄러졌다. 언덕길. 빙판길. 준호는 넘어졌다. 무릎에서 피가 났다.
하지만 도시락 가방은 놓지 않았다. 가슴에 껴안았다. 엄마의 밥이니까.
일어났다. 다시 뛰었다.
주변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어떤 아주머니는 "아이고, 저 아이 좀 봐" 하며 안타까워했다. 어떤 아저씨는 "요즘 애들은 다르긴 다르네" 하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모두 바빴다.
준호는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엄마! 왔어요! 오늘은 일찍 왔어요!"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가 미소 지었다. "고맙다, 준호야. 또 뛰어왔구나."
"네! 오늘 급식은 소고기야! 엄마 좋아하는 거!"
준호는 도시락을 열었다. 아직 따뜻했다. 김이 조금 났다.
엄마는 숟가락을 들었다. 하지만 손이 떨려서 잘 안 됐다.
준호가 숟가락을 받았다. "엄마, 제가 떠 먹여 줄게요."
"미안하다, 준호야. 엄마가..."
"아니에요. 저는 엄마를 지키기로 했어요. 아빠가 가시기 전에, '엄마를 부탁한다'고 했어요. 저는 약속을 지키는 거예요."
엄마는 눈물을 흘렸다. 준호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날 밤, 준호는 엄마가 잠든 후에야 자신의 숙제를 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지 못한 대신, 밤에 했다.
그가 잠든 것은 새벽 1시였다.
다음 날 아침. 준호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엄마의 밥을 준비하고, 학교에 가려고.
그런데 이상했다. 엄마가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 엄마!"
엄마는 의식이 없었다. 열이 높았다.
준호는 깜짝 놀라서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우리 엄마가... 엄마가 이상해요!"
경찰이 왔다. 엄마는 병원에 실려 갔다.
의사가 말했다. "폐렴이에요. 너무 늦었어요. 지금이라도 빨리 치료해야 해요."
준호는 병원 복도에 혼자 앉아 있었다. 손에는 텅 빈 도시락 가방.
간호사가 다가왔다. "얘야, 너 아빠는?"
"돌아가셨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몰라요. 저는 엄마밖에 없어요."
간호사는 그 말에 가슴이 미어졌다.
며칠 후. 엄마는 의식을 되찾았다. 준호가 손을 잡고 있었다.
"준호야... 엄마는 미안하다. 너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웠어."
"아니에요. 저는 엄마 아들이니까요. 엄마를 지키는 게 제 일이에요."
엄마가 약속했다. "준호야, 엄마는 꼭 나을 거야. 그리고 엄마가 너를 위해 도시락을 싸 줄 거야. 이제는 네가 뛰지 않아도 돼. 엄마가 네게 줄게."
준호는 울었다. 엄마도 울었다.
그날 이후, 사회복지사들이 찾아왔다. 엄마를 도와주는 서비스를 연결해 주었다. 준호는 더 이상 매일 뛰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준호는 여전히 빨리 걸었다. 습관이 되어서.
봄이 왔다. 엄마는 조금 나아졌다.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첫 나들이 날, 엄마는 준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준호야, 이제는 엄마가 네 손을 잡을게. 네가 뛰지 않아도 돼."
준호는 엄마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 손은 여전히 가늘고 약해 보였다. 하지만 따뜻했다.
"엄마, 저는 앞으로도 뛸 거예요. 엄마한테 빨리 가고 싶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혼자 뛰지 않을 거예요. 엄마도 같이 뛰어요."
엄마가 웃었다. 준호도 웃었다.
겨울이 다시 왔다. 하지만 준호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엄마는 아직 아프지만, 그래도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가장 차가운 겨울에도, 가장 따뜻한 사랑은 존재한다. 그것은 엄마를 향한 아이의 달리기 속에, 엄마를 보내지 않으려는 아이의 손길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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