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종합건축사사무소-주

칸 종합건축사사무소-주 건축그룹칸 /건축가 방철린과 칸종합건축사사무소의 스텝들은 항상 땅과 ? and experienced various works at Jung-lim Architects.

Bang Chulrin :
CEO/Master Architect of Architect group CAAN

After Graduated from Architectural department of Hanyang University, studied architecture under the architect Kim, Soo-geun at S.G.K. And than established the architectural studio and doing architectural works as a master architect at Architect Group CAAN. Also doing social activities as a adjunct professor of Hanyang University, as a honorable architect of KIA and also as a public architect of Seoul city.

건축설계에 진심을 다한 퇴계(이황,1501~1570)선생4. 맑은 못에 갓끈을 씻을 수 있어 도리어 기쁘구나.도산서당 1km 북쪽에 토계천(이 황선생의 호 퇴계의 원조 개천인 퇴계를 지금은 그렇게 바꿔 부르는 듯)이...
15/01/2026

건축설계에 진심을 다한 퇴계(이황,1501~1570)선생

4. 맑은 못에 갓끈을 씻을 수 있어 도리어 기쁘구나.

도산서당 1km 북쪽에 토계천(이 황선생의 호 퇴계의 원조 개천인 퇴계를 지금은 그렇게 바꿔 부르는 듯)이 흐르는데 그 주변에 퇴계 선생이 젊은 시절을 보낸 종택과 계상서당 그리고 선생 묘소가 위치한다. 이 개천은 동남방향으로 흘러 청량산 쪽에서 내려온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고 이 낙동강은 서쪽으로 흘러 도산서당 앞에 이른다. 도산기에는 이 강 이름이 낙천(洛川)이라고 나오는데 퇴계 선생은 낙천이 도산서당의 바로 앞을 지나는 부분을 탁영담(濯纓潭)이라 칭하였다.

퇴계 선생은 탁영담과 도산서당 영역 사이의 자연 지형물 들에도 하나하나 이름을 붙이는 애착을 가졌다. 곡구암(谷口巖), 천연대(天淵臺), 천광운영(天光雲影), 그리고 탁영담이 그 것인데 여기서 도산서당 영역의 구성상 화룡점정에 속하는 마지막 지형지물이 있다. 탁영담의 물이 출렁일 때마다 물속으로 들락날락하는 조그마한 물 속의 바위가 있는데 선생은 이 바위를 “그 생김새가 반타(盤陀)처럼 생겨서 배를 매어 두고 술자리를 마련할 만하다.” 며 반타석(盤陀石)이라 칭하였다. 도산기에 기록하는 도산서당의 맨 마지막 화룡점정은 탁영담의 반타석인 것이다.

150년쯤 후나 되었을까 겸재 정선(謙齋 鄭敾,1676~1759)은 도산서당을 돌아보고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라는 그림을 그렸다. 정선은 그림에서 도산서당 건축물 자체보다 부근의 자연환경에 더 집중하였고 그 자연을 퇴계 선생이야기 그대로 표현하였다. 아마도 퇴계 선생의 심미안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사고의 집중력에 감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그림의 가운데가 도산서당이고 오른쪽 절벽 상부가 천연대, 왼쪽 봉우리가 천광운영, 전면이 탁영담, 그리고 화룡점정에 속하는 물속에 잠긴 바위인 반타석과 묶여있는 배까지 퇴계 선생이 언급하고 명명한 것으로 추측되는 지형지물들이 자세히 표현 되어있다.

탁영담은 갓끈을 씻으므로써 세속의 때를 씻어내고 마음을 맑게 한다는 곳으로 성리학적 수양과 마음을 정화하는 상징적인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어 퇴계 선생의 성리학 선배인 회재 이언적 선생이 경주에 독락당(獨樂堂)을 짓고 4산5대(四山五臺)를 명명할 때 독락당 계정(溪亭)곁 자계천(紫溪川)의 넓직한 바위를 관어대(觀魚臺)라 하고 그 북쪽 작은 폭포 부근을 탁영대(濯纓臺)라 한 바 있다.

다음은 도산기에 올린 탁영담에 관한 7언절구 시이다.

濯纓潭
漁父當年笑獨醒 어부당년소독성
何如孔聖戒丁寧 하여공성계정녕
我來叩枻吟風月 아래고설음풍월
卻喜淸潭可濯纓 각희청담하탁영

탁영담
어부가 당년(옛날)에 홀로 깨어있음을 비웃었거니와,
공자가 친절히 경계하던 것은 어떤가(간절한 가르침과 비교하면 어떠한가)
내가 와서 노를 두드리고 청풍(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읊자니,
맑은 못에 갓끈 씻을 수 있어 도리어 기쁘다.
해석 : 김태환+AI(괄호)

이 시에는 중국 초 나라 때 굴원(屈原)의 고사가 인용되었다. 세상이 안 좋아졌을 때 굴원은 깨끗함을 지키려 했지만 한 어부는 "세상이 흐리면 그 흐린 물에 발을 씻고, 세상이 맑으면 그 맑은 물에 갓끈을 씻는다" 며 융통성 없이 홀로 고고함을 지키는 굴원을 비웃었다. 하지만 퇴계 선생은 공자의 가르침을 들어 군자로서의 도리를 지키고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 어부의 태도보다 공자의 신중하고 간절한 가르침이 더 낫지 않은가를 묻는 시가 아니겠는가. 끝.

방철린 씀

건축설계에 진심을 다한 퇴계(이황,1501~1570)선생3. 침상을 맞대어놓고 밤새도록 자세한 이야기 나누자.도산서당 서쪽으로 기숙사가 있고 그 북쪽에 주사(廚舍)인 하고직사(下庫直舍)가 있는데 도산기에는 하고직사에...
15/01/2026

건축설계에 진심을 다한 퇴계(이황,1501~1570)선생

3. 침상을 맞대어놓고 밤새도록 자세한 이야기 나누자.

도산서당 서쪽으로 기숙사가 있고 그 북쪽에 주사(廚舍)인 하고직사(下庫直舍)가 있는데 도산기에는 하고직사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 시설이 제자들의 식사를 제공하는 주요 시설인데 도산서당 영역 내의 것이라면 화초까지도 5언 잡영절구의 시를 써서 표현하면서 이 시설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걸 보면 직후에 지은 것인지 퇴계선생이 건축물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 모르지만 일단 스켓취에만 포함을 한다.

제자들이 기거하며 자습하고 쉬는 기숙사를 농운정사(隴雲精舍)라 하였다. 도홍경의 글에서 따왔다는 농운정사에 대하여 퇴계 선생은 도산기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常愛陶公隴上雲, 상애도공농상운,
唯堪自悅未輸君. 유감자열미수군.
晩來結屋中間臥, 만래결옥중간와,
一半閑情野鹿分. 일반한정야록분.

항상 사랑하노니, 도연명의 언덕 위의 구름을. 오직 혼자서 기뻐할 뿐 임금께는 줄 수가 없네. 늘그막에 집을 짓고 그 안에 누웠으니, 한가로운 정취 절반을 들 사슴과 나누네. (필자와 AI 협의 번역)

퇴계 선생은 도연명의 글 속에 있는 언덕 위의 구름을 가져다 기숙사의 이름에 사용한 것이다. 왜 언덕 위의 구름일까? 언덕과 같은 자연 속의 구름은 모습도 형태도 구속되지 않을 뿐 아니라 생겼났다 사라지는 것 또한 세상에 얽매여 있지 않으니 그야말로 자유 그 자체라 볼 수 있다. 이는 형식에 얽매인 관료의 생활이 아닌 자연과 함께 동화되어 생활할 수 있는 전원 속의 삶 그 속에서 일어나는 자유분방한 생각, 구속되지 않는 여유로운 사고의 틀을 의미하며 이러한 생활의 틀이 그가 추구하는 삶이며 사고의 세계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대 자연 속에서 깨끗하고 청순한 젊은이들과 마음을 터놓고 펼치는 진리탐구의 세계가 그가 추구하였던 세계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편액을 보면 글씨 또한 단순히 형태만 따온 게 아니라 글씨를 바꿔 써서 시의 의미를 부여 하였다. 퇴계 선생은 언덕 위의 구름을 혼자서 기뻐할 뿐 임금과는 나눠가질 수 없다 했지만 편액에서 雲자의 云받침을 두 개 넣어 구름을 사슴과 나눠 가진다는 마음을 표현하였다. 왜 일까. 임금과 자유로운 생각을 나누고픈게 퇴계 선생의 마음인데, 안타깝게도 복잡한 속세 속의 임금과는 마음을 나눌 수 없는 게 현실이고 보니 온화하고 평화로운 모습의 사슴, 선비의 순수하고 고고한 품격과 탈속의 정신세계로 상징되는 사슴, 그 사슴 같은 임금이라면 그 자유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아타까움의 표현이 아닐까.

편액에서 또한 사(舍)자의 干 자를 工 자로 바꿔 써 넣어 농운정사가 공부를 위한 채 임을 강조하였고 직설 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평면 형식을 工 자로 하였다. 일반적인 생각으로 유추한다면 工자의 양쪽 윙에 각각 기숙사의 방을 배치하여 선후배들이 나누어 쓰도록 하고 가운데 연결부분에 자습 공간을 배치했을 법도 한데 퇴계 선생의 공간 사용법은 달랐다.

남측에는 양쪽 윙 모두 청을 두고 오른편 윙은 자습을 위한 시습재(時習齋), 왼편 윙은 휴식을 위한 관란헌(觀瀾軒)이라 하여 공간을 세분화 하였고 이 공간을 외부와는 시선적 차단과 개방을 선택적으로 꾀할 수 있도록 하면서 서로 마주 보게 하여 대화형식의 폐쇄적 공간 형태를 취하였다. 제자들의 각자의 독자적 생활은 물론 중심성을 높인 대화와 토론 문화를 강도 높게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한 활동에 대처한 공간형성을 생각한 선생의 치밀한 배려가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양쪽 윙을 잇는 숙박을 위한 지숙료(止宿寮)를 하나의 긴 방으로 만든 것은 제자 선후배들이 함께 같은 방에서 기숙생활을 하며 서로 삼강오륜을 익히는 실습장이 되도록 하였음을 감지한다. 지숙료의 전면 벽과 문의 재치 있는 면 분할 그리고 두터운 문틀의 사용은 변화의 재미와 함께 시각적인 디자인의 재미를 일깨워주기도 한다. 그리고 좌우 평면에 동조된 박공지붕의 정연한 대칭성에서 기숙사 생활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가 요구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는 열과 성을 다한 퇴계 선생의 설계 노력이 건축물 외부로 나타난 결과라 보인다.

퇴계 선생은 도산기에서 위에 소개한 농운정사 7언절구 시와 함께 시습재, 관란헌, 지숙료 세개 파트에 대하여도 각각의 시를 통해 설명을 하였는데 여기서는 숙소 부분인 지숙료에 대한 시를 소개한다. 순수하면서 다소 익살스러움이 느껴지는 퇴계 선생의 농섞인 설득이 재미를 더한다.

止宿寮
愧無雞黍謾留君 괴무계서만유군
我亦初非鳥獸群 아역초비조수군
願把從師浮海志 원파종사부해지
聯床終夜細云云 연상종야세운운

지숙료
닭고기와 기장밥도 없이 그대를 머물게 하니 부끄러우나
나도 또한 애초부터 조수(鳥獸)와 무리를 이루자던 것이 아니다.
바라건대 스승을 따라 바다에 뗏목을 띄울 뜻을 가졌던 것이니
침상을 맞대어놓고 밤새도록 자세한 이야기 나누자.(역자 김태환)

방철린씀.

이야기는 계속됨.

건축설계에 진심을 다한 퇴계(이황,1501~1570)선생2. 늘그막에 돌아와 숨어 살면서 산수나 즐긴다도산서당의 자리를 잡고 난 후 선생은 설계에 정성을 다하였다. 이제까지의 경험을 돌이켜 보건데 건축설계가 부실할 ...
14/01/2026

건축설계에 진심을 다한 퇴계(이황,1501~1570)선생

2. 늘그막에 돌아와 숨어 살면서 산수나 즐긴다

도산서당의 자리를 잡고 난 후 선생은 설계에 정성을 다하였다. 이제까지의 경험을 돌이켜 보건데 건축설계가 부실할 때 나타나는 결과가 많은 불만과 불편함을 제공한다는 것을 인지하였기 때문이다.

선생나이 60세가 되었을 때 도산서당과 농운정사(隴雲精舍) 두동의 건축물이 1년 간격으로 차례로 지어졌는데 조종의 부름으로 반 년 넘게 한양에 있을 때도 설계도를 수시로 그려 보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한다.

도산서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구상하고 퇴계선생이 직접 기거하며 책을 읽고 학문연구와 개인적인 수양을 위한 방(房)과 휴식을 취하며 자연을 즐기고 손님을 맞이할 청(廳)을 계획하였다. 이 방과 청은 주자(朱子)의 글이나 시에서 따와 각각 완락재(玩樂齋:즐겨 완상함), 암서헌(巖栖軒: 바위에 깃듬)이라 하였다.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밴 퇴계선생이 선택한 집의 크기는 단순한 3칸이지만 실제로 써야 하는 공간은 다양하고 나름 크기를 요구하는지라 각 칸의 공간을 서로 내어주고 더하는 수법으로 필요한 공간을 알뜰하게 챙기고 확보하였다. 이로 인해 기둥을 이용한 단순한 칸의 모듈라 시스템 속에서 공간의 다양성을 확보하면서 입면의 변화도 동시에 충족하였다.

하지만 도산서당의 매력은 사실 암서헌 동쪽에 연결되어 있는 살 마루에 있다. 젊었을 적 도산서당에 처음 갔을 때 이 살 마루를 보고 짜릿함을 느꼈었다. 청 바로 옆 살 마루가 성근 마루 틈으로 맞는 바람으로 자연과의 친화성을 높힌 매우 매력적인 공간이면서 건축의 격을 달리 해 주는 요소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살 마루에 관한 이야기는 선생의 친필로 쓴 도산기(陶山記)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리저리 자료를 찾던 중 안 사실이지만 이 살 마루는 처음에 없었던 요소인데 서당의 제자들이 늘어나자 증축을 고려하던 중 제자인 이덕홍(李德弘)의 조부 이현우의 집에서 배워온 것이라 한다. 이현우의 집 처마 밑에 방을 달아매서 사용하였는데 선생이 이것을 보고 ‘모름지기 선비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다.(한국국학진흥원의 ‘한국의 편액1’)

선생은 이 아이디어를 살려 암서헌 동쪽에 살평상 두개를 맞댄 연결과 부섭지붕(익첨:翼簷) 설치로 공간 확장 작업을 간단히 끝낸 것이다. 이러한 공간의 변화는 선비로서의 퇴계선생의 검박한 생활태도와 사상이 겉으로 나타난 모습이지만 검박이 멋으로 둔갑하면서 단조로웠을 공간과 맞배지붕의 형태 변화에도 독특한 향기와 변화를 제공하였다고 본다. 또한 완락재 서편에 주방시설이 없는 아궁이 공간과 골방이 있는데 이 골방도 후에 증축한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부분의 증축을 살마루 증축 시 같이 했을까 했지만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언제 증축된 것인지 확실치 않다.

서원을 지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방당(方塘)이다. 천원방지(天圓方地: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개념으로서의 방지(方池)와 다른 의미를 갖는 방당은 학문탐구와 내면 수양의 공간인 서당에서 수양하는 ‘마음’을 비유하며 깨달음과 수양의 중요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도산서당 남쪽을 가로지르는 담장의 일부를 두 군데 끊어내고 서당 앞쪽엔 출입을 위한 싸리나무 사립문을 두어 유정문(幽貞門)이라 하고 그 동쪽 끊은 곳에는 방당을 설치하고 연을 심어 정우당(淨友塘)-‘마음이 깨끗한 친구’이라 하였으며 그 동쪽 곁에 있는 계곡에는 몽천(蒙泉) 이라 한 샘을 두었다.

퇴계선생은 도산기에서 도산서당에 배치 시킨 건축요소 18가지에 대하여 칠언18절(七言十八絶)을 지었고 주변 자연환경과 차경(借景)에 대하여 5언잡영26절(五言雜詠二十六絶)을 그리고 남(他)의 경치에 대하여 별록4절(別錄四絶)을 지었다. 그 중에 다음은 칠언18절 중 도산서당에 대한 시이다.

大舜親陶樂且安 대순친도락차안
淵明躬稼亦歡顔 연명궁가역환안
聖賢心事吾何得 성현심사오하득
白首歸來試考槃 백수귀래시고반

순 임금은 몸소 질그릇을 구웠지만 즐겁고 편안하였고
도연명은 농사를 지었지만 또한 기쁜 낯이었다.
성현의 마음을 내 어찌 알리오
늘그막에 돌아와 숨어 살면서 산수나 즐긴다.
(역자:김태환)
(주; 考槃은 은둔하여 자신만의 즐거움에 잠긴다는 뜻을 가짐.
試考槃은 고반의 경지를 헤아린다는 뜻을 가짐.)

태평성대를 이룬 요순 상고시대의 성군이었으나 우에게 선양을 하고 여생을 질그릇 구우며 살던 순 임금이나 동진말기 굽힘과 아첨불가 성격으로 관직을 떠나 농사를 지으며 무릉도원을 추구했던 도연명이 여생을 즐기는 방법과는 다르게 도산서당과 자연에 묻혀 오로지 학문과 후학양성의 즐거움으로 살겠다는 퇴계의 의지와 각오가 우러나는 시이다.

방철린 씀.
이야기는 계속됨.

건축설계에 진심을 다한 퇴계(退溪 이황,1501~1570)선생1. 이 즐거운 곳 향기를 뉘와 함께 누리리오이황 선생이 조정에 있던 45세(1545) 때 인종이 즉위 8개월 만에 죽고 명종이 즉위하자 을사사화 발생으로...
14/01/2026

건축설계에 진심을 다한 퇴계(退溪 이황,1501~1570)선생

1. 이 즐거운 곳 향기를 뉘와 함께 누리리오

이황 선생이 조정에 있던 45세(1545) 때 인종이 즉위 8개월 만에 죽고 명종이 즉위하자 을사사화 발생으로 많은 선비들이 파직과 참변을 당하였다. 이때 파직하였던 이황 선생은 복직을 하였지만 조정에서 물러날 뜻을 밝혔으며 이 즈음부터 호를 퇴계(退溪)라 하였다.

이후 외직인 풍기 군수직을 맡아 근무할 때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1543완공)을 조정에 요청하여 소수서원으로 사액을 받게 하며(1550) 서원 건립운동을 벌였고 서원을 통한 인재양성이 세상를 바꿀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였다.

퇴계 선생이 49세에 풍기군수 벼슬마저 버리고 고향에 내려와 유학자로서의 본인 철학적 이론인 이(理)와 기(氣)의 일원적 이원론(一元的 二元論)의 완성을 위한 은자생활을 맘 먹었다.

태어나서 49세까지는 5번 정도 집을 옮겼지만 벼슬까지 포기하고 초야에서 학문과 수양에 전념할 생각을 굳힌 이후로는 기거할 곳의 환경에 더욱 적극적이었다.

부지를 고르고 건축 작업을 시작했는데 세 번이나 땅을 바꿔가며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렇게 어렵게 결정한 부지 위에 환경조성을 위해 방당(方塘)을 파고 동서남북 자연 지형물인 대(臺), 당(塘), 천(川)에 명명까지 하며 완성한 집이 한서암(寒棲庵)이었다.

퇴계 선생은 그 환경 속에서 질그릇 대야와 짚자리를 쓰는 등 세속을 벗어나 거칠고 질박한 생활에 빠져 들었다. 조정에서는 계속 높은 관직을 제수하였지만 퇴계선생은 거듭된 상소로 귀향을 반복할 뿐 뜻을 굽히지 않았다.

51살이 되자 집의 부족함이 인식되어 한서암을 헐고 그 동북쪽 위치에 다시 또 집을 지었는데 그렇게 지은 집이 계상서당(溪上書堂,溪堂)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서당마저 협소하고 허술하여 쉽게 망가지자 57살 되는 해에 제자들의 청으로 새로운 장소에 또 다시 서당을 짓기로 맘 먹었다. 몇 번의 경험을 살려 집 짓기 전 머리 속의 구상을 감당할 땅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몇 차례 방문 후 결정한 곳이 지금의 도산서당(陶山書堂) 자리였다.

퇴계선생은 이 생애 마지막 서당 자리를 찾은 기쁨을 시로 표현하였다. 이 시에서 선생의 철저한 자연주의 사고와 새로 지을 집에 대한 기대와 애착을 읽을 수있다.

風雨溪堂下庇牀 풍우계당하비상
卜遷求勝遍林岡 복천구승편림강
那知百歲藏修地 나지백세장수지
只在平生採釣傍 지재평생채조방
花笑向人情不淺 화소향인정불천
鳥鳴求友意偏長 조명구우의편장
誓移三徑來棲息 서이삼경래서식
樂處何人共襲芳 낙처하인공습방

비바람 치는 계당 책상조차 못 가릴제
좋은 곳에 옮겨 볼량 숲 등성이 두루 찾았네
어찌 알았으랴 백년토록 학문할 땅이
나물캐고 고기낚던 곁에 있을 줄을
사람맞는 꽃 미소는 정이 얕지 않고
벗 찾는 새소리는 뜻이 심장하다.
원림을 옮겨와 깃들기를 다짐하니
이 즐거운 곳 향기를 뉘와 함께 누리리오

(주, 三徑 ; 은자(隱者)의 문안에 있는 뜰, 또는 은자가 사는 곳, 한나라 장후가 정원에 세개의 좁은 길을 내고 소나무,대나무,국화를 심은 데서 유래-필자는 여기서 스케일상 원림이라고 해석함)

방철린 씀.
이야기는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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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된 파일 속에서 1990년도 공간 지에 실린 저의 글을 발견했네요. 21세기 건축,도시,환경에 관해 기성 건축인 들 에게 묻는 글인데 저는 4378년(=서기2045년)에 대해 썼었네요. 이루어진 것도 있지만 그 때까지 모두 이루어 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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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건축가 드로잉전에 출품한  드로잉입니다.
25/01/2024

2024 건축가 드로잉전에 출품한 드로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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