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7/2026
* 조미호 대표가 작성한 글입니다.
📌 트렌드 이야기 — 빨래방, 지난 7년의 역사
7년 전, 그러니까 2019년 3월의 어느 날. 또 하나 운영하던 블로그에 내가 끄적인 글 제목이 "제트 세대는 빨래방에서 셀카질을?"이었다. (글 쓴 당일 네이버 첫 화면에 등극)
지금 다시 읽으니 기억이 새록새록.그래서 기록을 다시 찾아봤다.
발단은 데일리트렌드 김소희 대표님의 한마디였다. "요즘 애들은 빨래방에서 사진을 그렇게 찍는다더라." 빨래 돌리는 곳에서 왜 셀카를?
궁금해서 그날 빨래방을 한참 검색했다.
책 4,000권을 꽂아둔 '빨래하는 카페'가 있었고, 브루클린엔 인스타 계정부터 판 친환경 세탁소가 있었다.
일본은 시간제로 공간을 빌려주는 데까지 진화하는 중이었으며, 에르메스는 80주년 기념으로 실크 스카프를 염색해 주는 '빨래방 팝업'을 열고 있었다.
그날 나는 비전문가의 추측이라며 한 줄 적었다. "빨래방이 복합공간으로 진화하고, 이쁘게 마케팅하면서, 전염병처럼 퍼지는 거 아닐까."
그러고 백색가전 만드는 LG전자에게 농담 삼아 따졌다. "맨날 스테인리스만 뽑지 말고, 이렇게 이쁜 것 좀 만들어 보라지." 7년 뒤, 그 농담이 진담이 됐다. (삼성이 컬러 가전을 내놨다.)
그 씨앗들은 어떻게 자랐나?
그때 모은 사례들이 지금 어떻게 됐는지, 찾아봤다.
* 코펜하겐 The Laundromat Cafe 2004년 아이슬란드 친구 넷이 차린 곳이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코펜하겐과 레이캬비크에서 멀쩡히 돌아간다. 책장과 세계지도 벽, 빨강 부스. 그곳이 관광 명소로 남았다. 브런치도 하고 맥주도 팔고, Bar가 아주 잘 되는 곳이다.
* 브루클린 Celsious
로프트 천장에 친환경 세제, 인스타 계정()부터 판 곳. 이 집은 더 영리했다. 팬데믹이 닥쳐 셀프 세탁이 막히자 셀프서비스를 접고 픽업·배송으로 갈아탔고, 매장 안에서 명상 클래스(SIT & SIP)와 커뮤니티 행사를 열었다. 친환경 세제 브랜드까지 만들어 팔며 8년째 살아남았다. 위기 때 '세탁기'가 아니라 '서비스'를 다시 설계한 것이다.
* 에르메스 Hermèsmatic
그때는 "참 이쁘다"고만 적었다. 그런데 이게 한 번으로는 안 끝났다. 오렌지색 세탁기에 빛바랜 에르메스 실크 스카프를 넣으면, 새 색으로 무료 염색(dip-dye)해 돌려준다. 교토 마치야부터 뉴욕·LA까지, 명품이 '빨래'라는 행위 자체를 브랜드 경험으로 만들어 버렸다. 팝업이 아니라 시그니처가 됐다.
✅️일본이 가장 진화했다. 역시 '공간 경험'은 일본인가. 2019년에 내가 본 일본 빨래방은 '시간제로 공간을 빌려주는' 정도였는데, 7년이 지난 지금 두 곳 기업이 눈에 띈다.
하나는, 👍원조 격인 킷사 란도리
(喫茶ランドリー). 킷사텐(카페)+란도리(런드리)의 결합어다.
2018년 도쿄 모리시타의 낡은 공장 1층을 고쳐 연, '동네 가사실(まちの家事室)'이 딸린 카페다. 세탁기·
건조기는 물론 재봉틀과 다리미까지 두고, 채소 마르셰와 무수카레를 판다.
"높은 건물을 올려도 거리는 안 변하지만, 1층이 무엇이냐에 따라 거리가 되살아난다"는 철학. 빨래방이 아니라 '동네의 거실'을 만든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곳을 만든 게 "1층이 곧 동네를 만든다(1階づくりはまちづくり)"를 슬로건으로 내건 공간 디자인 회사 그라운드레벨이라는 점. 사람이 '왜 그곳에 머무는가'를 디자인 씽킹으로 설계한 결과물이다. 내 생각에 로컬 디벨롭먼트 기업이기도...
다른 하나는 지금 가장 핫한 진화형, 👍바루코 런드리 플레이스(Baluko Laundry Place). 코인 세탁에 카페·베이커리·워크스페이스를 붙였다.
홋카이도 밀로 만든 도넛과 콜롬비아 스페셜티 커피를 내고, 요요기우에하라·미타카·가나자와를 거쳐 규슈까지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이젠 '빨래하러' 가는 게 아니라 '머무르러' 가는 공간이 됐다.
* 한국
"대학가에 은색 세탁기만 있다"던 풍경은 그대로인 듯?
국내 세탁 시장은 2021년 약 5조 원에서 2026년 6.6조 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1인가구 비중은 2015년 27.2%에서 2023년 35.5%로 늘었고, 맞벌이도 늘었다.
집에서 빨래할 시간도, 널 공간도 없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졌다. 그 틈을 무인 코인세탁소가 메웠고, 런드리고 같은 비대면 모바일 세탁이 등장했으며, 이제는 프랜차이즈로 규모화되고 있다.
일렉트로룩스 '런드리파크' 같은 복합 세탁 문화공간이 등장은 했다.
세계적 세탁장비 브랜드의 하이스핀 장비에 국내 런드리 전문 기업 코리아런드리(KLC)의 솔루션이 더해진 곳으로, 미디어 월과 바테이블, 무대까지 들여 파티·모임을 열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공식 홈페이지)
7년 전 내가 일본 사례를 보며 끄적인 그 그림이 큰 기업이 나서야만 그림이 그려지는 구조는 좀 안타깝다.
💡 진짜 인사이트는 '빨래'가 아니다
여기서 멈추면 그냥 빨래방 트렌드 글이다. 내가 2019년에도, 지금도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살아남은 곳들은 전부 '세탁기'를 판 게 아니다. The Laundromat Cafe는 머무는 시간을, Celsious는 위기 속 새 서비스를, 에르메스는 브랜드 경험을, 킷사 란도리는 동네의 거실을, 바루코는 라이프스타일을 팔았다.
똑같이 빨래방을 차려도, 기계만 들여놓은 곳과 '왜 여기 머무는가'를 설계한 곳의 운명은 갈렸다.
업(業)의 본질은 제품이 아니라 맥락이다. 무엇을 파느냐가 아니라, 사람이 왜 그곳에 머무느냐를 설계한 쪽이 이긴다. 7년 전 빨래방에서 셀카를 찍던 그 장면은, 사실 모든 비즈니스에 던지는 질문이었다.
그러니 어떤 일을 하든 한 번 물어보자.
🖤지금 당신의 업은 무엇을 팔고 있는가 제품인가, 머무는 이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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